“이신칭의” (以信稱義)

“이신칭의” (以信稱義)

                                  

     오늘은 전 세계의 개신교회가 다 함께 지키는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부터 500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타락에 대한 항의의 차원에서 95개조 논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게시하면서 종교개혁의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수도사였던 루터는 수도원의 지침에 따라 철저한 고행과 금욕생활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살수록 그의 마음 속에는 끝없는 좌절과 두려움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아무리 거룩한 삶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걸레와 같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민 가운데서 시편 22:1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외치셨던 그 절규가 아닙니까? 그의 마음 속에 이런 질문이 일어났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절망을 맛보셨을까?     그 분은 약한 분도 아니고, 불의한 분은 더더욱 아닌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십자가에서 그런 고통을 당하셨을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한 고난과 죽음은 불의한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었다는 사실이 그의 심령을 파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해서 무조건 진노하고 심판하는 것으로 끝내는 무서운 재판장이 아니라 죄인들을 사랑하사 살리고자 몸부림치시는 자비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그의 영혼에 지진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면 불의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그 분의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가? 로마서1장 17절을   읽을 때에 그의 영혼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의 어떤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모든 죄값을 십자가 죽음으로 다 지불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를 의롭다고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게 된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Alone)는 오늘도 불변하는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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